竹島問題の歴史

6.6.11

Why Did Koreans Fail to Mention Imperial Edict #41 to the US in 1951?

The following is a very well written and reasoned explanation in Korean for why Korea failed to use the 1900 Imperial Edict # 41 argument with US authorities in their failed attempt to get the US to recognize Liancourt Rocks (Dokdo) as Korean territory in the 1951 Treaty of Peace with Japan. The following Korean explanation can be found at this site:

독도 문제의 진실 獨島問題의真實


I do not know who runs the site, but he writes Korean quite fluently.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본 영토 범위는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 의해서 결정되었습니다. 그 조약의 최종 초안에서는 다케시마/독도는 일본의 영토라고 정해졌습니다. 그것을 알게 된 한국 정부는 양유찬(梁裕燦) 주미 한국 대사를 통해서 1951년7월19일차 문서로 독도를 한국의 영토에 넣어달라고 요청하는 문서를 미국 정부에 제출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미국 정부는 1951년8월10 일차 이른바 러스크 서간을 통해서 한국 정부의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이것은 유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여러분 다 알고 있겠지요.

그런데, 양유찬 대사는 미국에 대해서 독도를 한국의 영토에 넣어달라고 요청할 때, 그 근거로서 1900년 대한제국 황제 칙령 제41호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왜 주장하지 않았을까요?

현대 한국 정부는 칙령 제41호에 규정된 석도(石島)가 독도이며 대한제국은 1900년에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세계에 선언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칙령 제41호는 한국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한 중요한 근거인 것 같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미국 정부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하면 미국 정부도 고려했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양 대사는 칙령 제 41호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군요. 왜 언급 하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는 명백합니다.사실 칙령 제41호에 규정된 석도는 독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칙령 제41호에 규정된 석도는 독도가 아니기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미국 정부에 대해서 거짓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현대 한국 정부도 입에서는 칙령 제41호에 규정된 석도가 독도이라고 주장 합니다만, 석도에 관한 구체적인 지도나 문서를 전혀 제시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료는 거의 없기 때문이지요.

한국 사람 들은 다케시마/독도를 불법점거 하고 있음을 속이려고 하는 정부의 허위 주장을 언제까지 믿습니까?  한국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진실을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3 comments:

  1. It looks like that Korean fail to know about "Imperial Edict #41" until around 1969, when 李漢基 introduced it in his article "Korea's Territory". matsu told me about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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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hey probably knew about Edict #41 before 1969, Kaneganese, but there was just no Korean scholar silly and irresponsible enough until then to try to make the claim that the "Seokdo" (石島 - 석도) in the edict was "Dokdo" (獨島 - 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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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Precisely, they probably knew about Edict, but it is possible that they didn't know what it says. For example, in 金元龍's 『「鬱陵島」古跡発掘調査報告書 』(1963), he says the year Ulleungdo being promoted to "郡" was 1901, not 1900. I'd like to know when Korean government officially started to claim Seokdo was Dok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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